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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9월호

천대광, 광활한 광장을 채우는 개인의 오라

작가가 그리는 이상도시는 우리 삶을 깊게 관통해 자신만의 색깔로 도시를 물들인다.

<건축적 조각/공허한 빛의 집/RGBCMYK 유리집>, MMCA 청주프로젝트 2021 《천대광: 집우집주》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2000년대 초부터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조각·설치·회화·공예·건축 전 영역을 아우르는 작품세계를 펼쳐낸 작가 천대광. 그동안 한 갈래로 규정할 수 없는 여러 굵직한 프로젝트에서 그의 이름을 마주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 작은 도시를 만들기도 하고(《집우집주》2021-22), ‘견인도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경기도 양평과 독일 오버하우젠을 탐구하고, 국내 각지에 그만의 구조물을 만들었다. 올해 서울거리예술축제에서 그는 광활한 서울광장을 자신만의 색깔로 물들인다. 주변 분위기와 공기 흐름마저 작품에 녹여내며 익숙한 공간을 낯선 공간으로 전환하는 그의 작업 안에서 관람객은 새로운 관계성을 맺고 공간을 새로이 인식한다.

  • 천대광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쿤스트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2007년 마이크와 디억 뢰버트에게서 마이스터쉴러 과정을 마쳤다. 《빛이 깨울 때》(2023, 서울식물원), 《가볍고 희미한 빛》(2022, 호리아트스페이스), 《집우집주》(2021,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공간실험》(2020, 양평군립미술관) 등 18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 서울과 양평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그동안 한 매체에 고정되지 않은 폭넓은 작품세계를 선보였죠.
일반적으로 작가들은 한 가지 기법이나 주제에 평생 천착해요. 재료의 물질적 특성을 지배해 작품 완성도를 높이려는 이유가 크죠. 저는 완성도보다는 재료와 테크닉을 실험하는 데 흥미가 있습니다. 한 가지 재료와 주제에 천착하면 어느 지점에서는 자가 복제에 머물면서 창의적으로 작업하기 어려워요. 그 점을 경계합니다. 외주나 하청이 만연한 현대미술 신에서도 정신적 주체와 물리적 주체는 동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의 손으로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것과 제 손으로 하는 건 차이가 커요. 대량 생산 단계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종국에는 실험한 기법, 재료 등이 한 작품 안에서 결합해야 합니다.
천대광의 작품이 항상 새로운 이유네요. 서울거리예술축제 2024에서 선보이는 <아른아른, 하늘하늘>은 유년 시절 추억, 한가위 민속놀이와 세시풍속에 바탕을 둔 작업이라고요.
축제가 추석과 겹쳐 자연스럽게 한가위를 떠올렸어요. 추석 풍경과 세시풍속은 『삼국사기』와 중국 수나라 역사를 기록한 『수서』 등에 기록돼 있어요. 8월 15일이면 활쏘기 시합에서 이긴 자에게 왕이 포목을 하사하거나, 7월 16일부터 8월 보름까지 왕이 신라 6부의 여자들 가운데 두 왕녀를 뽑고 부내 여자를 두 패로 나눠 길쌈을 하게 했죠. 민속놀이는 한반도 지역 특성에 기인합니다. 게다가 추석은 다가올 겨울 의복을 장만하는 시기이기도 해요. 옷감을 짜는 풍속은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부터, 세시명절은 농경에 적응하면서 생성됐다고 보거든요. 저도 어린 시절에 세시풍속을 경험했고, 그 기억을 반영해 설치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천대광 특유의 기하학 구조와 다양한 빛깔이 기대됩니다.
기본적으로 삼각형과 육각형이 점증되는 형태입니다. 천지인삼재와 삼태극 도형, 환웅이 이끌고 온 3천 명 무리, 동아시아 전설의 새 삼족오, 전통음악에서 자주 나타나는 3박과 고전 시가의 3음보 등 여러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3은 우리 민족에게 의미가 있는 숫자예요. 3의 배수인 3·6·9도 중요하죠. 건축 구조적으로도 가장 안정되고 튼튼한 숫자입니다. 벌집 구조가 자연에서 가장 완벽한 구조라고 하잖아요. 그런 3의 의미를 담아, 삼각형 결합 구조의 각 변에 커튼처럼 미세한 그물 구조의 24색 천을 드리울 거예요. 그 천이 투영되고 가산 혼합하면서 무수한 색의 스펙트럼이 펼쳐지는 작업입니다.
장소나 공간과 연관 있는 작품을 자주 보여줬는데, 이번 작품도 광장 안에 어떤 모습으로 자리할지 궁금합니다. 작품을 구상할 때 특정 공간에 어떻게 접근하나요.
장소 특정적이라는 의미를 간단하게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전시 장소 이외의 곳에서는 작품의 의미를 상실한다고 보면 장소 연관적 작업은 많지 않아요. 그만큼 공간에 접근하는 방식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작업에 따라 공간 자체를 분석하거나 건축물의 역사적 의미를 공부해 건축물과 연결고리를 맺을 방법을 고민해요. 주변 지형을 미술관 내부로 끌어들이거나 특정 공간의 사회적 의미를 분석해 예술 오브제를 설치하기도 하고요. 독일에서 활동할 때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축물이나 장소에서 종종 작업했어요. 사실 한국에 돌아온 후로는 그런 전시 공간을 만나기가 어려워서 자연스럽게 다른 작업도 많이 하고 있긴 합니다.
그렇게 공간과 장소에 대한 깊은 고찰에서 출발한 작품을 선보일 때는 물리적 특성을 파고드는 것 외에도, 지형·역사·사회·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리서치가 빛을 발했죠.
독일과 한국 등에서 직접 도시 전체의 거리와 건축물·시설물 등 사진과 영상 자료를 수집해 도시 문화와 정체성을 연구하고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었죠. 역사적 사실이나 논문은 웹에서 정보를 구하기도 했고요. 그 외에도 동남아시아 국가와 일본 등을 자주 여행하면서 다량의 건축물과 도시 곳곳의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작품 소재로 활용했어요. 평범한 일반 주택의 건축 양식에도 민족 고유한 전통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거든요.
흥미롭네요.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캄보디아의 톤레사프 호수 수상가옥에 사는 사람들은 상당수가 인도네시아계예요. 11세기 참파 왕국의 참족이었던 이들이 크메르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해 정착할 땅을 잃고 물 위에 집을 지었죠. 이후 베트남의 보트피플이 유입되고 땅이 없는 자들이 모여 마을을 이뤘어요. 베트남 주택은 길과 면한 앞은 좁고 이웃과 다닥다닥 붙어 안쪽으로 긴 구조인데, 프랑스 식민 시대 때 과도한 세금을 피하기 위한 결과물이에요. 집은 환경과도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돌이 많은 곳엔 돌로, 나무가 많은 곳엔 나무로 집을 짓고, 몹시 춥거나 더운 지역의 집은 벽이 두꺼워요. 건축 양식은 역사·사회·문화·경제 등 모든 것의 집약체죠. 제 리서치 과정은 결국 현재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공공 설치 작품도 많이 선보였는데, 이런 작품에서 관람객의 역할이 무엇일까요.
저는 작가가 실험실의 과학자와 같다고 봐요. 작품은 지극히 개인적인, 조형과 미학 실험의 결과물이고, 그 자체로 종결되죠. 순수미술은 항상 가장 개인적이되 동시에 미술사적 의미를 고민해야 해요. 대중의 구미에 관한 고민은 상업디자인의 몫이에요. 저는 결과물을 대중에 공개하고, 대중은 자신의 취미로 예술을 감상하죠. 대중 참여적 미학을 실현하는 작가도 있지만, 저는 아닙니다. 관람객이 의미 없다는 뜻이 아니에요. 다만 제 관심은 내부로 향해 있고, 저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생산하고자 골몰해요.

<아른아른, 하늘하늘> 조감도, 작가 제공

결국 개인의 내면에서 출발한 진정성 있는 작업이 더욱 관람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거네요. 그럼 천대광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요?
삶 자체입니다. 고정된 주제를 파고들지 않아 작품 유형이 다양한 만큼 약간 산만할 수도 있어요. 다만 저는 자신에게 집중해요. 가령 여기 제가 존재한다고 치면, 제가 살 집을 짓고, 매일 아침 일어나 쉬지 않고 저에게 필요한 걸 만들어갑니다.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면 스스로에 대해 잘 알아야 해요. 생활 방식, 생각, 취향을 고민하고, 나아가 나는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죠. 작업을 한다는 건 계속해서 자신을 지켜보는 과정이에요. 저는 작품의 우상화나 과도한 의미 부여를 지양합니다. 작품이란 저에게 집중하는 동안 생산된 부산물일 뿐이에요. 다시 말해, 작업하는 동안의 제가 중요합니다. 삶과 앎이 곧 사람인 것처럼요. 매일 저를 알고 싶어서 작업해요.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세상과 소통하려는 의도는 아니에요. 물론 결과물을 공공장소에 전시하고 사람들이 제 작품을 관람하면 기쁘죠.
마지막으로,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주제나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그런 걸 미리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제가 2013년부터 선보인 ‘견인도시 프로젝트’의 하나로, 현재 거주지인 양평군을 리서치한 ‘물까치 프로젝트’2016를 선보였는데요. 이처럼 현실에 기반해 저만의 이상도시를 계획하고 실험하고 있어요. 이와 병행해서 여러 작업을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전시에 많이 참여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현재 한두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하고 싶은 작업이 많은 만큼 앞으로도 제 작업을 계속해나갈 계획입니다.


백아영 미술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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