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밤마다 축제
국립국악원 우면산별밤축제
잠 이루지 못하는 늦여름 밤, 아끼는 사람과 함께 국립국악원에서 소소하고 즐거운 쉼표 하나 찍어보는 건 어떨까.
국립국악원 연희마당에서 한바탕 펼쳐진 전통연희와 민속놀이 한마당 ⓒ국립국악원
한 손에는 휴대전화를, 한 손에는 에어컨 리모컨을 들고 누울 곳을 보아 다리를 뻗는 것. OTT의 세계를 유유히 헤엄쳐 마침내 꿈나라에 이르는 것. 한숨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면 일용할 양식이 구비돼 있는 것. 일상에서, 사람들 틈에서 벗어나 홀로 고고히 게으름과 무료함을 만끽하는 것.
직장인이 꼽는 최고의 바캉스를 꿈꾸며 여름휴가를 호기롭게 집에서 보냈다면, 멀리 떠나고 싶었지만 여러 사정상 녹록지 않았다면, 늦여름 토요일 저녁 이곳으로 한번 발걸음 해보시라 권하고 싶은 축제가 있다.
이마를 스치는 산바람과 귀 기울이면 들리는 풀벌레 소리, 흐릿하게나마 빛나는 도심의 별빛이 완성하는 축제. 우면산별밤축제에는 곁에 앉은 이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보아도 좋고, 흥겨운 추임새를 더하거나 들썩들썩 어깨춤을 추며 즐겨도 눈총받지 않을 공연이 듬뿍 준비돼 있다.
우면산 아래 자리한 국립국악원 야외 공연장 연희마당은 2013년 개관했다. 무대 앞 가운데 넓은 마당을 두고, 둘러앉을 수 있도록 산비탈에 반원형으로 객석을 놓았다. 공연장 이름에 걸맞게 개관 초기에는 <별별연희>라는 제목의 상설 연희 공연을 운영했다. 전국 팔도의 연희패가 농악, 가면극, 줄타기, 창작연희 등 그간 갈고닦은 주 종목을 가지고 연희마당으로 모였다. 삼국 시대부터 기록으로 남아 있는 옛사람들의 연희가 오늘의 관객이 즐기기에도 부족함이 없음을 증명하는 무대였다. 2014년부터는 창작국악을 지향하는 신진 국악인의 실험적인 무대, <빛나는 불협화음> 공연도 연희마당에 판을 벌였다. 록·재즈·레게·팝 등 타 장르 음악과 국악의 만남, 그리고 전통을 벗어던진 새로운 우리 음악과 관객의 만남이 성사됐다.
2017년에는 시기를 달리해 펼쳐지던 두 개의 공연이 하나의 축제로 거듭났다. 공연장 주변에 푸드트럭이 들어왔고, 전통문화 체험 공간도 마련됐다. 공연장 안에서 돗자리를 펴고 앉아 공연과 식도락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무대 앞의 마당은 출연진과 관객이 필요에 따라 정답게 나눠 쓰는 공간이 되었고, 꽉 들어찬 1천여 명의 관객이 객석 뒤쪽 잔디 깔린 비탈면에까지 앉아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더운 날엔 땀범벅이 된 풍물패에게 집에서 챙겨온 얼음물을 건네고, 비 오는 날엔 똑같은 색깔 우비를 입고 삼삼오오 자리를 지키는 관객들의 축제. 첫 번째 우면산별밤축제는 국립국악원 유튜브 채널에 영상으로도 남아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예약이 마감되곤 했던 우면산별밤축제는 2020년 팬데믹으로 인해 관객과 녹화 영상으로 만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입장 인원을 줄이면서 10년 꼬박 이어올 수 있던 것은 여전히 축제를 손꼽아 기다리는 관객 덕분이다. 올해 8월 24일부터 9월 21일까지 예정된 우면산별밤축제도 사전 신청을 받아 관객을 맞이한다. 비와 모기를 막을 우비와 팔찌도 준비했다. 장마와 폭염을 관통해 선선히 불어올 늦여름 저녁 바람을 쐬며 아끼는 사람의 손을 잡고 이곳에서 소소하고 즐거운 쉼표 하나 찍고 가시기를 권한다.
한 가지 팁을 더하자면, 도봉산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서울을 한 바퀴 도는 서울 둘레길의 열 번째 코스가 우면산을 지난다. 우면산 코스와 따로 또 같이 3킬로미터 남짓 이어지는 무장애 숲길이 올해 초 개통됐다. 나무 데크로 경사를 완만히 하고, 오래도록 산을 지킨 큰 나무 그늘 아래를 골라 길을 냈다. 녹음 우거진 우면산의 가장 순한 길을 따라 걷다보면 길 끝에서 우면산별밤축제가 펼쳐지는 연희마당을 만날 수 있다.
-
ⓒ서울돈화문국악당
오는 8월 23일부터 9월 1일까지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실내악축제가 열린다. 2021년 시작해 매년 호응을 얻으며 이어온 국악 축제. 올해도 거장 황병기의 작품부터 신진 작곡가의 위촉 작품까지 다채로운 국악 실내악 작품이 연주된다. 자연음향을 추구하는 서울돈화문국악당 공간에서 다양한 편성의 국악기가 자아내는 색다른 매력과 섬세한 음악을 즐겨보자.
글 김보람 국립국악원 국악진흥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