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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4월호

춤, 일상의 노동이자 가장 믿음직한 친구 대상 수상자 장혜림

영예의 수상자로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것 역시 ‘춤’ 덕분 아니겠냐며 활짝 웃는,
99아트컴퍼니 예술감독이자 무용가 장혜림과 만났다.

제2회 서울예술상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자가 발표되는 순간 기분이 어땠나요?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예술 전 장르가 모여 있는 그곳에서 무용을 대표해 상을 받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대상이 발표되고 저희 무용수들이 많이 울었어요. 그래서 왜 그렇게 울었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한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바라봐주는 것이 감격스러웠대요. 무엇보다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한 일과 연습실에서 보낸 숱한 시간이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감동이었죠. 무용수들이 얼마나 진심을 다해 노력했는지 알기에 그들에게 이 상을 안겨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수상 소감을 말할 때 스크린에 부모님의 모습이 비쳤어요.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부모님은 누구보다 제 진정한 팬이신데, 힘들게 춤추는 자녀를 본다는 게 항상 마음 쓰이는 일이라 ‘이제 그만하지’ 하는 마음도 있으시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그저 예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무용을 시켰는데, 이렇게 업으로 삼을 줄은 몰랐다고 하셨거든요. 좀 편하게 살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던 차에 이렇게 상을 받는 모습을 보니 너무 감격스러웠다고 하셨습니다.

상금 2천만 원을 어떻게 쓰려고 하는지 질문해도 될까요?

우연인지 모르겠는데, 저는 작업을 앞두고 있는데 지원금을 못 받거나 예산이 없을 때면 이렇게 상금을 주더라고요. 어떻게든 그만두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봐요.(웃음) 올해도 10월에 공연을 계획하고 있는데 지원금을 못 받아서 어떻게 하나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선물같이 상금이 생겨서, 바로 주저하지 않고 공연에 쓰겠다고 정했습니다.

고생한 무용수들에게 감사를 전하시기에 상금으로 고기를 사주실 줄 알았거든요.

안 그래도 저희 고기 먹었어요.(웃음) 사실 시상식이 열리던 날 저녁에 연습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시상식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무용수들이 말은 못하고 혹시 연습이 없어지나 기대하고 있었대요. 참 착한 사람들이죠. 그날만큼은 연습을 뒤로 하고 모두 고기를 먹으며 수상의 감동을 나눴습니다.

수상작 <제ver.3 타오르는 삶> 이야기를 해 볼까요? 가장 처음 어떻게 시작한 작품인가요?

2018년 한국과 스웨덴의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며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스웨덴 커넥션’이라는 공연을 기획했어요. 그때 안성수 예술감독님께서 두세 달 정도 스웨덴에 가서 작업을 할 수 있겠냐고 제안하셨고, 저는 선뜻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을 시작한다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알 수 없는 용기가 저를 도전하게 한 것 같아요. 전통춤을 기반으로 한 창작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의미 있는 작업이 되려면 전통으로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떠오른 춤이 ‘승무’였습니다. 승무는 제게 기도의 춤처럼 느껴졌고, 그렇다면 이 시대의 기도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됐어요. 성경 ‘레위기’를 보면 고대의 제사법 중 동물을 태워서 그 연기를 신에게 전하는 번제燔祭가 나오는데, 이 시대의 번제는 자신을 태워 진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동’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제>에는 스웨덴 말뫼Malmo에 있는 스코네스 댄스시어터Skanes Dansteater의 무용수 7명이 출연했고, 스웨덴과 한국에서 공연한 후 이탈리아 무대에도 초청받았습니다.

2019년 한국-스웨덴 수교 60주년을 맞아 국립현대무용단과 스코네스 댄스시어터의 안무 교류 프로젝트로 선보인 장혜림 안무 <제> ⓒTilo Stenge

2021년 무용가 배정혜가 특별 출연한 <제ver.2 타오르는 삶> ⓒBAKi

스웨덴 무용수들은 한국춤의 움직임을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승무의 춤사위와 호흡법을 공유했고, 한국춤의 숨 쉬는 방법, 북을 칠 때 손의 움직임도 가르쳐줬습니다. 이 춤이 작품 <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시켰는데, 모두 호기심을 갖고 재미있어했어요. 특히 호흡법에 대해 이렇게 숨을 쉬어 본 것이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초연의 성공에서 멈추지 않고 이 작품을 연작으로 이어간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아쉬운 것들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수정할 방법을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레 버전 2로 넘어가게 됐어요. 당시 작품을 만들면서 ‘노동’이라는 오브제로 목탄을 쓰려고 했는데, 스웨덴 근로기준법에 따라 무용수들의 건강을 해롭게 할 수 있기에 사용하지 못했거든요. 대안으로 무용수들이 손에 목탄을 바르고 있다가 몸에 묻히는 방법으로 공연했지만, 저는 그 점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 연습실에서 종이를 깔아놓고 목탄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두 사람이 아니면 그릴 수 없는 그림을 그려보자고 해서 손을 마주 잡고 그리는 2인무인 <제ver.2 타오르는 삶>이 만들어졌고요. 항상 그렇지만 공연이 끝나면 아쉬운 부분이 보이기 때문에 다음 공연에는 그런 부분을 보완하거나 대폭 수정하기도 해요. 세 번째 버전인 <제ver.3 타오르는 삶>으로 상을 받은 지금도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있고, 5월에 있을 영국 런던 더 플레이스The Place 공연에서 꼭 수정하자고 무용수들과 약속했습니다.

무대 위에 가야금과 거문고 연주자가 함께했죠.

승무의 음악은 대부분 장단으로 이뤄져 있잖아요. 저는 타악기가 아닌 악기로 음악을 구성해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 가야금 연주자 주보라에게 두 번째 버전의 음악을 부탁했습니다. 여성 무용수 두 명이 한 시간을 끌어가는 작품이니 연주자도 두 명이 들어오면 좋겠다고 했죠. 보라 씨가 거문고를 제안했는데, 좀 위험한 구성이지만 섬세한 현악기 두 대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기대가 됐습니다. 연습실에서 함께 만들며 완성했어요.

그 후 <제ver.3 타오르는 삶>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요?

그사이 버전 2.5라고 할 수 있는 공연도 있었는데요, 2021년 창작산실에서 올해의 레퍼토리 지원을 받아 두 번째 버전을 재공연하게 되면서, 노동에 대한 또 다른 해석으로 노년의 무용가가 이 춤을 추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스승이자 80세의 원로 무용가이신 배정혜 선생님을 <제> 안에 녹여내는 연출을 하게 됐습니다.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했는데, 배움이 큰 작업이었어요. 그다음 해에도 공연할 기회가 생겼는데, 문득 기금을 받아서 4~5년 정도 지난 이 작품을 관객에게 똑같은 캐스팅, 똑같은 춤으로 보여주는 것이 맞는지 질문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스웨덴 커넥션’ 중 다른 작품에 출연했던 무용수 안나 보라스 피코Anna Borras Pico가 떠올라 섭외했고, <제ver.3 타오르는 삶>을 만날 수 있게 됐네요.

지난해 10월에 선보인 무대가 가장 최근 버전인데, 앞으로 새로운 <제>가 계속 만들어질까요?

네. 앞으로 만들고 싶은 <제>는 남성 무용수 버전이에요. 음악도 그에 맞게 다시 만들어보고 싶어요. 사실 지금 음악이 좋아서 그대로 두고 남성 무용수들이 출연하는 구상을 했는데, 음악가들이 음악도 바꿔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악기 구성도 열어놓고 있습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재밌을 것 같아요. 요즘은 장르 제한 없이 우리 작품을 빛내줄 남성 무용수들을 유심히 찾고 있습니다.

무용단 이름인 ‘99아트컴퍼니’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그리고 ‘나인티나인’과 ‘구구’ 중에 어떻게 읽어야 하죠?

‘99아트컴퍼니’는 2014년에 만들어져 이제 10년이 됐는데요, 평소 숫자를 좋아하다 보니 99에 의미를 두게 되더라고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을 생각하며 정한 이름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가 늘어나는 것 같아요. 99의 의미가 토양이라는 느낌도 들어요. 그게 전통춤일 수도 있고 나의 정체성일 수도 있어서, 단단한 토양에 씨앗 하나를 심으면 무궁무진하게 자란다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처음에 ‘나인티나인’으로 읽었지만, ‘구구’도 정감 있고 좋아서 이제는 두 가지 모두 부르고 있어요.

지난해 신전통 작품 <사랑가>를 추셨어요. 앞으로도 전통춤을 계속 추실 건가요?

물론이죠. 너무 좋아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배정혜 선생님을 모셔서 저희 무용수들과 전통춤을 수련하고 있어요. 우리 춤은 제 창작의 기저에서 든든한 바탕이 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도록 잊지 않으려 해요. 궁중 정재도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누구보다 조용한 무용가인데, 리더로 무용단을 이끄는 것이 어렵지는 않나요?

저는 예민하고 생각이 많아도 힘든 것을 금방 잊어버리는 사람이에요. 저희 무용수들은 이런 망각하는 성격이 제 최대 장점이라고 얘기해요. 계속 얽매여 있거나 뭔가가 너무 많이 축적되면 예술을 하기 힘들잖아요. 무엇보다 제가 10년 동안 무용단을 유지하고 운영할 수 있던 이유는, ‘쉬지 말자’는 자세였습니다. 뭔가 막히고 힘들 때 쉼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 순간에도 (반 발짝 앞으로 가거나 혹은 뒤로 물러나면서) 작업을 계속했어요. 그게 제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춤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어릴 때는 내 인생의 전부 같았어요. 춤추는 것에 미칠 정도로 좋았거든요. 밤새 음악을 틀어놓고 자면서, 음악이 내 몸에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춤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안무를 하게 되면서 춤은 제게 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삶을 바라보는 방법, 무용수들과 소통하는 방법 등 모든 것이 저를 훈련하는 과정 같았습니다. 그 후로 또 10년이 지나 보니 춤은 저를 믿게 해주는, 그런 존재 같아요. 이번 서울예술상 시상식에 제가 있을 수 있는 것도 춤 덕분이고, 제가 무대 위에 존재하고 관객과 연결될 수 있는 것도 전부 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춤은 나를 세상과, 또는 누군가와 연결해주는 존재이고, 이제는 어느덧 가장 좋은 친구인 것 같습니다.

글 무용평론가 김예림
사진 Studio K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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