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르는 것이 아닌 도약을 향한
무용가를 위한 해외 레지던시
춤추고 누빌 수 있는 공간,
해외 교류를 꿈꾸는 단체와 축제가
전 세계 무용가들을 불러모으는 이유는 무엇일까.
머무르는 것이 아닌, 한 단계 높이 나아가기 위한 구름판이
되어주는 레지던시 사례를 살펴봤다.
1964년 설립돼 루아요몽 수도원 부지를 토대로 다양한 문화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는 루아요몽 재단은 2008년부터 안무 창작에 관한 레지던시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으며, 에르메스 재단이 이를 후원하고 있다 ⓒFondation Royaumont
루아요몽 재단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중 워크숍 현장 ⓒFondation Royaumont
뉴욕의 무브먼트 리서치는 교환 프로그램Exchange Artist, 2년 지원 레지던시 등 안무가를 위한 다양한 레지던시를 진행하고 있으며, 소매틱, 즉흥, 테크닉 등 다양한 수업이 1년 내내 운영되고 있다. 서울무용센터와 협약을 맺어 매년 1명씩 교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6주간의 안무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는 안무가를 위한 안무 워크숍MELT Class이 진행되며, 1960년대 포스트모던댄스 발생에 역사적 거점이 된 저드슨 메모리얼 처치Judson Memorial Church에서 공연을 열게 된다.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K3 안무센터의 레지던시는 2006년 독일의 탄츠플란 도이칠란트Tanzplan Deutschland라는 기관의 지원을 받아 설립됐고, 현재는 함부르크시와 함부르크 문화부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K3는 100년이 넘은 기계 공장을 개조한 공연장 캄프나겔Kampnagel에 있으며, 다양한 구조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젊은 안무가들이 제약 없이 안무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단기(3개월)와 장기(8개월)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있고, 1년에 1회씩 각 3명의 참가자를 선정해 ‘탄츠호흐드라이TanzHochDrei’라는 제목으로 캄프나겔 공연장에서 결과물을 선보이게 한다. 한국 안무가로는 2012년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임지애를 시작으로 김이슬·권령은·정다슬·서영란 등이 참가했다.
예술가 레지던시로 사용되는 루아요몽 수도원 전경 ⓒFondation Royaumont
오스트리아 댄스웹은 현지 기관이 직접 공모를 받아 선정하고 있다. 22세 이상 30세 이하 전문 무용가·안무가이면서, 영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자가 지원할 수 있다. 댄스웹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무용 축제 ‘임펄스탄츠ImPulsTanz’의 일환으로 매년 7월에서 8월까지 5주간 진행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매년 전 세계에서 50~60여 명을 선정해 집중 트레이닝하고 있으며, 현대무용계의 주요 인사를 코치로 초청해 아이디어와 지식 교류, 지속적인 트레이닝에 중점을 두고 진행한다. ‘임펄스탄츠’는 1984년 시작했으며 한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문예위 지원과 별개로 매년 많은 한국 무용가들이 참가하고 있다. 1980~90년대 여름마다 한국의 젊은 무용가들이 미국 ADF에 참가하던 것에서 오스트리아 임펄스탄츠로 옮겨간 것은 현대무용의 시류가 미국에서 유럽으로 옮겨간 경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예술가 레지던시로 사용되는 루아요몽 수도원 전경 ⓒFondation Royaumont
국가 간의 수교로 이벤트성 레지던시가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2018년 한국과 스웨덴 수교 60주년을 맞아 국립현대무용단과 스웨덴 스코네스 댄스시어터Skanes Dansteater의 안무 교류 프로젝트를 위해 레지던시가 진행됐다. 2019년까지 2년에 걸쳐 한국과 스웨덴에서 선정한 두 명의 안무가가 각각 상대 단체의 무용수와 신작을 제작하는 형식이었는데, 2018년 ‘스웨덴 커넥션 I’ 공연에서 스웨덴의 페르난도 멜로Fernando Melo가 국립현대무용단과 작업한 신작 <두 점 사이의 가장 긴 거리>를 선보인 데 이어 2019년에는 한국의 안무가 장혜림를 2개월 동안 스코네스 댄스시어터에 파견해 신작 <제 祭, Burnt Offering>를 제작했다.
오래된 기계공장 부지에 세워진 K3 안무센터 탄츠플란 함부르크 ⓒLisa Strautman/K3 Tanzplan Hamburg
대학 산하의 연구센터에서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 일본 교토예술대학 산하의 교토무대예술연구센터가 주최한 한·일 공동 제작 프로젝트의 경우 한국 무용가 김성용과 일본 무용가 시라이 츠요시가 2년간 작품 <원색충돌>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됐다. 2013년 기획해 2014년 한국과 일본에서 쇼케이스를 열고 2015년 교토예술대학 내 공연장인 춘추좌에서 2차 쇼케이스와 완성작을 발표했는데, 이 작업은 2016년 도쿄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Setagaya Public Theater에서 재공연되며 일본 무용계에서 김성용의 인지도를 높였다.
몸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무용 장르는 레지던시를 통해 전 세계 무용가들이 교류할 수 있으며, 레지던시는 서로의 안무 기법을 공유하고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예술의 장터가 된다. 더 많은 한국의 안무가들이 해외 진출의 안정적 플랫폼으로써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활용하기를 바라며, 나아가 서울무용센터도 세계적 레지던시 운영기관이 되길 기대한다.
한국-스웨덴 수교 60주년 기념 안무 교류 프로젝트로 스웨덴 안무가 페르난도 멜로가 국립현대무용단과 작업한 <두 점 사이의 가장 긴 거리>는 스코네스 댄스시어터의 레퍼토리로 공연되고 있다 ⓒTilo Stengel
글 김예림 무용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