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공간’의 오페라 공연이 주는 평온함
한강노들섬오페라 이회수 연출가요즘 노들섬이 변신하고 있다. 올해 초 서울시가 노들섬을 ‘글로벌 예술섬’으로 만들겠다고 공표한 이후 축제와 전시 등이 잇따라 개최되면서 시민 방문이 증가하는 등 활기를 띠고 있어서다. 올해 가을에는 서울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서울비보이페스티벌〉(9월 24일), 〈서울거리예술축제〉(9월 30일~10월 2일), 〈한강노들섬오페라〉(10월 1~2일) 등이 펼쳐질 예정이다. 특히 〈한강노들섬오페라〉는 과거 서울시가 오페라하우스를 건립하려 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무산된 상황에서 개최되는 만큼 남다른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노들섬 잔디마당에서 열리는 〈한강노들섬오페라〉는 올해 파일럿 성격으로 모차르트의 인기 오페라 〈마술피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연출을 맡은 이회수 오페라 연출가를 만나 이번 공연의 준비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관객 입장에서 야외무대는 ‘열린 공간’이 주는 안정감과 평온함을 누릴 수 있어요.
자연의 어루만짐이라고 해야 할까요?
가족들이 소풍 오듯 오셔서 〈마술피리〉를 보셨으면 좋겠어요.
10월, 노들섬을 뜨겁게 달굴 오페라 <마술피리>의 감동
“실내 극장과 비교해 야외무대는 공연을 올리기까지 스태프가 신경 써야 할 게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 야외무대는
‘열린 공간’이 주는 안정감과 평온함을 누릴 수 있어요. 자연의 어루만짐이라고 해야 할까요? 가족들이 소풍 오듯 오셔서
〈마술피리〉를 보셨으면 좋겠어요.”
오페라 〈마술피리〉는 왕자 타미노가 밤의 여왕의 딸인 파미나 공주를 구하기 위해 새장수 파파게노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여정을 담는다.
모차르트 최후의 오페라인 〈마술피리〉는 이탈리아어로 오페라가 만들어지던 시기에 이탈리아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서민을 위해 공연된 징슈필Singspiel이다. 징슈필은 연극처럼 중간에 대사가 들어 있는 독일어 노래극을 가리킨다. 〈마술피리〉가
초연된 오스트리아 빈의 비덴 극장 역시 ‘소시지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장터에 줄 서서 입장권을 사야 하는’ 서민적인 곳이었다.
초연 당시부터 큰 인기를 모은 〈마술피리〉는 지금도 밤의 여왕의 ‘복수의 아리아’, 파파게노의 ‘나는야 새잡이’ 등 귀에 익은 아름다
운 음악으로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작품을 깊이 들여다보면 계몽주의와 프리메이슨 등 각종 철학적·종교적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하지만, 줄거리만 놓고 보면 선악의 대결을 다룬 동화 같아서 지금도 가족 대상 오페라로 자주 공연된다.
“저는 ‘오페라의 대중화’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오페라의 정체성을 훼손해 가면서까지 하는 시도에는 반대합니다.
(과거에는 대중이 즐겼지만) 지금은 순수예술로 남은 오페라는 대중화될 수 없는 만큼 마니아층을 늘려가야 합니다. 저는 노들섬의
야외 오페라 〈마술피리〉 같은 작품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이 오페라에 입문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오페라에 더욱
흥미를 느끼길 바라는데요. 이들 중 누군가는 마니아가 되길 바랍니다.”
오페라의 존재 방식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피력한 이회수 연출가는 2010년대 들어 국내 오페라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이탈리아로 성악 유학을 떠난 이회수 연출가는 로마국립미술원에서 무대디자인을 전공하며 연출가로 전향했다.
2006년 체코 프라하 스타트니 오페라극장 주최 국제 연출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입상하는 등 유럽에서 연출가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2008년 귀국한 이후에는 라벨라 오페라단 등 여러 민간 오페라단 및 프로덕션에서 연출한 작품이 국내 오페라 관련
상을 여러 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2013년 창작 오페라 〈손양원〉으로 제6회 대한민국오페라대상 창작 부문 대상과 연출상,
2017년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로 제15회 대구오페라축제 작품상, 2021년 브레히트 〈서푼짜리 오페라〉로 제19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제작예술상을 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회수 오페라 연출가
야외 공연 즐기는 관객 수준도 높아져
이회수 연출가는 재정적으로 늘 쪼들리는 국내 오페라계 제작 환경 속에서 작품의 주제를 뚜렷하게 드러내면서도 볼거리가 있는
연출로 호평받아 왔다. 노들섬에서 선보이는 이번 야외 오페라 〈마술피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그동안 국내에서 〈마술피리〉를 여러 차례 연출했는데요. 작품 해석 등 기본 연출 방향은 이전 과정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특히 이번 공연은 2019년 마포문화재단 주최 상암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마술피리〉와 마찬가지로 3시간 정도 되는 원작을 100분으로
압축했습니다. 일몰 시각과 조명, 인근 주거시설과 음향, 화장실 사용 등 야외 공연의 애로점을 다각적으로 고려해 7시 30분에
시작해 인터미션 없이 진행합니다. 영상과 함께 단일 세트를 사용하는데 화려한 색감의 큐빅이나 레고 같은 세트로 설치미술 작품처럼
보이게 할 예정입니다. 이와 관련해 잔디마당에 〈마술피리〉에 나오는 뱀이나 새 등 동물 모양의 조형물을 넣는 것도 생각 중입니다.
관객이 오페라 속 주인공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고 공연이 없는 낮에도 노들섬을 둘러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을 것 같아요.”
야외 공연의 경우 날씨에 대한 대비가 필수적이다. 특히 비가 많이 오면 공연을 취소하거나 중단해야 하는 만큼 플랜B를 염두에
둬야 한다. 무엇보다 감전 사고 예방을 위해 마이크나 앰프 등 장비를 보호하면서 관객들이 비에 젖지 않도록 빨리 대피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회수 연출가의 경우 지난 2019년 서울 상암 월드컵공원 수변 무대의 〈마술피리〉와 지난 7월 KT&G 상상마당 춘천 야외무대의 〈카르멘〉이 비 때문에
이틀 공연 중 하루는 취소 또는 중단되는 아픔을 겪은 적이 있다.
“상암 월드컵공원의 〈마술피리〉가 태풍 링링으로 이틀째 공연이 취소되고 실내 갈라 콘서트로 대체됐어요. 공연이 취소된 허탈감으로 한 달 가까이
무기력하게 있었습니다. 지난 7월 KT&G 상상마당 춘천에서 〈카르멘〉을 공연할 때도 폭우로 중간에 중단했는데요. 당시 관객들이 불평하거나
화를 내는 대신 비를 야외 공연의 일부로 생각하고 즐기려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요즘 관객의 수준에 놀라면서 저 역시 예전보다는 유연해진 듯합니다.
참고로 이번 노들섬의 〈마술피리〉는 장기 예보로 볼 때 비와 맞닥뜨릴 확률이 낮습니다. 다만 10월 초라 저녁에는 좀 쌀쌀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은 관광 활성화를 위한 ‘그레이트 선셋Great Sunset 한강 프로젝트’ 구상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최대 3만 석 규모의 ‘서울형 수상예술무대’ 건립 계획과 관련해 ‘호수 위 오페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페스티벌Bregenz Lake Festival〉을
벤치마킹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번 〈한강노들섬오페라〉는 그 출발점이 될 듯하다. 이회수 연출가는 “많은 사람이 〈브레겐츠 페스티벌〉을 이야기하는데
오페라 연출가로서 브레겐츠 페스티벌이 지금의 위상에 오르기까지 오스트리아 지자체와 정부가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지원해 온 점, 그리고
제작까지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는 점 등을 살피기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한강노들섬오페라〉 포스터
저는 ‘오페라의 대중화’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오페라의 정체성을 훼손해 가면서까지 하는 시도에는 반대합니다.
지금은 순수 예술로 남은 오페라는 대중화될 수 없는 만큼 마니아층을 늘려가야 합니다.
글 장지영_《국민일보》 선임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 사진 공간느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