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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3월호

예술가와 시민 사이 접점을 고민하다
서울문화재단 전·현직 대표이사의 만남

서울문화재단 창립 15주년을 맞아 유인촌, 안호상, 조선희, 주철환, 김종휘 등 전·현직 대표이사 5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문화재단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시작해 2020년 대학로 시대를 맞이하는 서울문화재단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까지, 재단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약 2시간 동안 이어진 이날의 대화를 지면으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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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장 김종휘(2018. 9~현재)
  • 패널 유인촌(2004. 3~2006. 9), 안호상(2007. 2~2011. 12), 조선희(2012. 3~2016. 8), 주철환(2016. 9~2018. 7)
  • 일시 2월 12일(화) 오전 11시~오후 1시 30분
  • 장소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2층

서울문화재단이란?

김종휘

3월 15일은 재단 창립 15주년입니다. 학창시절에 비유하면 벌써 대학교 졸업 무렵입니다. 초등·중등·고등학교 과정의 재단을 먼저 겪으신 전 대표님들께서 생각하시는 서울문화재단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꺼내주셨으면 합니다. 변하지 않아야 할 정의도 있을 것이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변해야 하는 정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유인촌 전 대표님부터 이야기해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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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

처음 생각이 많이 납니다.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큰 도시에 서울문화재단이 제일 먼저 생긴 건 아니었습니다. 당시 ‘이제는 전문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서울문화재단이 발족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주로 공무원들이 일을 해왔으니까요. 공무원이 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 민간에서 주도할 수 있도록 하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는 게 목표였죠. 그런 전반적인 틀을 기조로 만들었습니다. 이후로 여러 대표님들을 거쳤기 때문에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당시엔 경기문화재단이 규모가 제일 크고 예산도 제일 많이 받는 문화재단이었습니다. 그래서 경기문화재단을 벤치마킹했습니다. 이제는 연조(年條)가 쌓여 서울문화재단이 가장 활발하고 조직 규모 면에서도 가장 커졌고, 더 많은 역할을 하는 재단으로 가고 있지 않나요? 재단을 정의한다고 표현하기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서 만들어진 재단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를 계속 지켜가고 공무원들과 확실하게 분리된, 좀 더 창의적인 조직으로 정의하면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안호상

유인촌 대표님께서 재단의 초석을 잘 닦아두셨고 저는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일들을 했습니다. 저는 예술의전당에서 일하다 왔지만 예술의전당도 그렇고 다른 예술기관들, 예를 들어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곳은 늘 하드웨어 중심의 문화적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죠. 안타까운 점은 런던, 뉴욕을 비롯한 전 세계 어느 도시를 가봐도 그런 서비스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매우 적다는 것입니다. 직접 기관을 찾아가 문화적 혜택을 즐기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상당수의 시민들이 공공의 문화 서비스를 즐기지 못하고 있죠. 서울문화재단이 이런 문제에 집중하여 여러 부분에서 문화적 서비스를 담당하며 대한민국 서울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시민들을 위한 서비스를 많이 했는데 찾아가는 서비스, 아니면 시민이 직접 예술가가 되어보게끔 하는 서비스가 주였죠. 어쨌든 기존의 전통적인 예술기관들이 담당하지 못했던 서비스를 서울문화재단이 선진적으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런 역할을 꾸준히 하다 보니 전국의 여러 자치단체 재단들이 우리 재단을 벤치마킹하게 되었죠. 하나의 롤모델이 되어 차근차근 확산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예술기관과 다른 새로운 시대에 맞는 문화적 서비스를 개발하고 모델이 되어서 선도적으로 해나갔고, 지금도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조선희

안 대표님이 말씀하신 내용의 연장선인데, 지금 서울문화재단의 위치라는 게 한국의 문화정책 전달 체계로 보면 광역시도 문화재단의 벤치마킹 대상인 것 같아요. 제가 2012년에 서울문화재단에 왔는데, 그해 가을에 광역시도문화재단 대표자회의가 생기며 문화재단들 간의 네트워크가 구축되었습니다. 경기문화재단이 먼저 출발했지만 서울문화재단과는 사업을 운영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고 서울문화재단은 지역 문화재단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여러가지 서비스 모델들을 많이 갖고 있지요. 예술교육이나 생활문화사업을 비롯해서. 또 서울로 보자면 그동안 기초문화재단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어떻게 유기적으로 잘 협력할지가 과제라고 봅니다. 서울시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김종휘 대표님은 좋은 때 오신 것 같습니다. 박 시장님은 예전부터 공무원들에게 산하기관에 갑질을 하지 말고 자율성을 주라고 하셨지만 그게 잘 관철이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3선 되시고 나서 확실하게 그 기조가 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전의 저희들보다 훨씬 의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이게 양날의 칼이라 생각해요. 기관이 자율성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만큼 기관장의 부담이 커지는 거죠. 대표이사가 스스로 엄격한 자기 검열이 필요해지는 상황인 것이지요.

안호상

공직이 무서운 자리가 됐어요.

조선희

그럼요. 그리고 전권을 위임한다는 게 굉장히 무서운 얘기죠.

유인촌

지금 전권을 위임받은 건가요?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김종휘

그런 조치가 따로 있는 건 아니고요.

조선희

제가 볼 때 확실히 저희 때와는 달라요.

안호상

두렵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일이네요.

김종휘

흐름상 현재는 민선 7기로 박원순 시정 10년을 완료하고 정리하는 때 같습니다. 서울시 문화본부와 재단의 관계를 보면 재단이 좀 더 자율적이고 주도적으로 일하고 서로 사전 협의와 공유를 잘 해나가자는 분위기입니다. 재단 임직원의 생각도 궤를 같이 합니다. 15년 차를 맞은 재단이 지금까지 비유컨대 ‘구약’ 시대였다면 향후 ‘신약’ 시대를 열어야 하니, 주어진 일을 잘 한다는 자세를 넘어 우리 스스로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선택하고 또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점에서 재단의 향후 3~4년이 중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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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

저는 국어 교사 출신으로, 그게 저의 밑거름입니다. 제가 가르친 퇴계 이황의 시조 중에 ‘古人(고인)도 날 몯보고 나도 古人(고인) 몯뵈/ 古人(고인)을 몯뵈도 녀던 길 알피잇니/ 녀던 길 알피 잇거든 아니 녀고 엇뎔고’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건 조선시대 말이니까 현대어로 풀어보면 ‘옛사람도 나를 못보고 나도 옛사람 못보았지만 옛사람이 가던 길이 있으니 그 길 잘 따라가겠다’라는 내용입니다. 김 대표님은 다섯 번째 대표시고, 여기 계신 모든 대표님들은 각자의 전문성, 각자의 캐릭터, 각자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여기서 좋았던 것도 있고 아쉬웠던 것도 있을 겁니다. 그런 걸 잘 알고 난 뒤 유 대표님의 장점을 강화하고 조 대표님과 안 대표님 그리고 저의 장점을 합치면 좋겠습니다. 1년에 한 번일지 대표의 임기 중 한 번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대화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서울문화재단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전반적인 시대정신… 시장의 3기 등 여러 가지 정황들이 있으니 현 대표의 어깨가 무겁기도 할 것입니다. 저희가 있을 때보다 더 많은 권한을 위임받으셨고 위임은 책임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힘든 점이 많으실 겁니다. 서울문화재단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어요. 서울문화재단은 서울, 문화, 재단입니다. 이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죠. 제가 대표님께 권하고 싶은 것은 서울문화재단 구성원들의 즐거움, 그들의 자부심을 지켜주며 즐겁게 일하는 전문가들의 그룹으로 만들어달라는 거예요. 직원마다 각자의 전문성이 있습니다. 자부심이 있고요. 대표는 직원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갈 때 전체적인 구성원의 일부로서 무언가를 해주길 바라기보다는 각자의 개성, 전문성, 스타일 같은 것들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그게 교육 마인드이기도 합니다. 학교 교실에서 공부 잘하는 몇 명에게 ‘너희들만 좋은 학교 가면 돼’라고 하기보다는 얘는 그림을 잘 그리지, 얘는 명상을 잘하지, 축구를 잘하지 이런 것들을 관찰과 대화를 통해 파악해야 합니다. 직원들로부터 즐겁다는 얘기가 나오면 좋겠어요. 이 즐거움이 ‘난 편해서 좋다’는 게 아닙니다. ‘난 내 마음대로야. 대표가 나에게 위임했으니까. 이 돈을 마음대로 써야지’가 아닙니다. 그건 큰 문제가 될 거예요. 대표부터 말단 직원까지 기본적으로 해야 할 당위는 공평하고 공정하게 서울에 사는 예술가들을 도와주고 서울시민들의 생활문화, 생활예술을 고취시키는 일입니다. 이건 너무도 당연한 것이고, 대표님은 이뿐만 아니라 직원들과 소통하고 방패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론 병풍도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직원들로부터 ‘회사 가는 게 너무 즐겁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서울문화재단이 됐으면 합니다. 이게 제가 재직 당시 했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든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림자가 드리울 때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이라는 기본 원칙을 지키면 됩니다. 잘하는 사람에게는 인센티브를 주고, 문제가 있는 사람은 규제하면 되는 것이죠. 저는 대표님께 이런 것을 부탁드립니다. 즐겁게 일하는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대표님은 코디네이터가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김종휘

15년 차가 된 서울문화재단의 이후 전망과 이 무렵부터 일하게 된 저에게 전하는 당부가 두루 포함된 이야기들을 해주신 것 같습니다. 잘 새겨듣겠습니다만 그 당부에 일일이 답변드리기보다는 재단의 현재 상황과 고민을 말씀드리는 편이 좋겠습니다. 우선 문화예술계를 강타한 근래의 큰 이슈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당사자’라는 말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이 말인즉 문화예술계에는 여전히 장르별, 분야별 수요와 요구가 존재하고 작동하지만, 이 울타리에 한정해서는 파악하기 힘든, 내가 당사자라고 하는 주체의 각성 같은 에너지가 올라오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이 당사자의 목소리에 부응해 나가려는 재단의 준비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아직은 전환기를 겪으며 재단의 관점과 태도를 바꿔가는 출발선상입니다. 앞서 재단을 전문가 집단이라고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우리 재단의 직원들에게 현장의 예술가, 지역활동가, 청년을 만날 때 재단의 직원은 누구에게 무엇으로 당사자인가 묻고 같이 공부하는 중입니다. 우리 재단 직원이 당사자로 만나지 않으면 재단이란 대변인이 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에만 머뭅니다. 서비스 제공도 하고 대변자 역할도 하되 그 선을 넘어 재단 직원은 직원대로 어떤 당사자가 될 것인지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재단은 예술가, 지역, 청년의 현장 속에서 협치하고 혁신하는 균형 감각을 많이 길러야지 합니다. 그래야 재단 직원들이 합의하고 공감하는 조직의 정체성이, 구호를 넘어서 내면화된 ‘나는 누구다’가 생기고 그 힘으로 서울시와 현장 사이에서 주도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구(舊) 동숭아트센터 완공 이후 서울문화재단의 방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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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휘

동숭아트센터를 서울문화재단이 인수하면서 어떤 언론인은 “서울문화재단의 대학로 시대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대학로에 서울문화재단이 개관하면 연극은 너무 당연하고 이외에 다른 장르들, 특히 여기를 거점으로 활동하지 않았던 무용, 음악, 시각예술 등의 장르가 대학로를 무대로 활동하고 재단과 왕래하는 일이 잦아질 것 같습니다. 대학로라는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은 상징과 서울문화재단이 만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서울문화재단이 견지해갈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시기적으로는 2020년 겨울에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 서울문화재단, 예술청, 극장이 개관하는데 아시는 것처럼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성북에도 6개월 뒤쯤 역할이 연결되는 서울시 앵커가 생깁니다. 현재 그 공간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선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한 정거장 사이로 대형 앵커 두 개가 생기는 꼴인데, 이러한 상황도 고려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인촌

( 자연스럽게 뒤를 보며) 저게 당선작인가요?

김종휘

네. 뻥 뚫린 마당이 중정 개념으로, 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설치하고 입구에서부터 빙 돌아서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유인촌

건물 전체에 대한 리모델링 설계네요.

김종휘

일부는 증축도 있고요. 극장 구조 진단을 했는데 안전 부분을 보강해야 해서 사실 이름은 리모델링이지만 거의 다 건드리는 대공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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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괜찮네요. 위에 저렇게 나오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유인촌

제 생각에는 사실 그렇게까지 많이 건드릴 것 같으면 헐고 새로 짓는 게 나을 텐데요. 지금 저 정도까지 손대려면 신축 비용에 맞먹는 비용이 들어가지 않나요? 오래된 걸 싹 헐고 새로 짓는 게 낫지 않아요?

조선희

안전진단이 있지 않았나요? 건물 구조가 튼튼한지, 리모델링이 나은지 신축이 나은지 이미 판단을 했겠죠.

유인촌

좀 전에 김종휘 대표님께서 성북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곳은 어떤 공간인가요?

김종휘

연극이 중심인데 지역민을 위한 커뮤니티 시설도 일부 있는 것 같고, 지역민의 요구 등 여러 의견을 받아들여 다목적으로 쓰일 것 같습니다.

유인촌

연극인들은 이곳(舊 동숭아트센터)을 더 많이 찾을 것 같네요.

김종휘

서울에 사는 예술인들의 주거 분포도를 살펴보니 중심에서 밀려나 있었습니다. 북쪽으로는 성북, 강북, 도봉, 노원이, 남쪽으로는 관악이 마지노선이더군요. 그곳에 많은 예술인들이 거주하고, 아니면 안양, 수원으로 넘어가는 식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남북으로 나눠진 상황에서 어쨌든 북쪽에만 두 개의 앵커가 지어지는 것이죠. 성북동에 생기는 앵커를 서울문화재단이 위탁받아 운영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된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곳을 같이 운영할 경우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조선희

서울연극협회에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나요?

김종휘

3월에 서울연극협회를 만날 예정인데요.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극인들과 토론하면서 서울시나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극장 시설이 계속 늘어나는 것이 바람직한가, 그럼 더 행복해지는가 할 때 그렇지는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선희

공간이 생길 때마다 다 떠안으면 서울시와 재단도 부담이 될 겁니다. 예산 부담이나 조직 부담도 그렇지만 연극계의 중요한 시설들을 다 끌고 간다는 것은 모든 책임도 짊어지는 셈이니까요. 연극계와 충분한 의사소통을 하면서 운영 원리를 말하고 운영을 해 나가야 할 텐데 그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사실 공공의 역할이라는 것을 민간단체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서로 보완적인 역할은 확실히 필요한 것 같습니다. 민간이 운영하면서 공공의 역할도 하는가에 대해선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상호보완하면서 운영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겠죠.
남산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임대계약이 2020년 12월 말까지로 알고 있는데, 그 뒤가 불투명하긴 하지만 어쨌든… 접는 걸로 생각하고 계신가요?

김종휘

재단이나 서울시 입장에서 아직 가부를 말하기는 어려운데, 개인적으로 봤을 때 그쪽(학교법인)이 현재 분위기에서 저희 외에 다른 곳에 임대를 주거나 직영으로 운영하거나 공사할 그럴 형편은 아닌 듯합니다. 연극인과 시민이 만들어가는 공론과 여론에 따라 향배가 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조선희

제가 페이스북을 하는데 연극인들 페친이 많습니다. 올 1월부터 페이스북에 접속만 했다 하면 남산예술센터에 대한 얘기가 자주 나오는데 신경 쓰이더군요. 바깥에서 서울문화재단의 조직 개편에 대해서 문제 제기하는 게 좀 불편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의구심이 이해가 가요. 남산예술센터는 재단의 다른 사업과는 분명 구분되는 지점이 있거든요. 안호상 대표님부터 시작해서 10년 동안 남산예술센터를 공공극장으로서 어떤 위상과 존재감을 만들어왔습니다. 극장장이란 직제를 둔 것도 조직적으로, 대외적으로나 내부적으로 의사결정 등에서 독립성을 가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남산예술센터는 연극계와 협업을 하는 공간이고, 재단의 다른 공간이나 사업 같은 결재라인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봐요. 그런데 극장운영팀이 지역문화본부로 들어가고 조직도에 극장장이라는 직제 자체가 실종됐더군요. 보면서 의아했는데, 아마 밖에서도 비슷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종휘

잘 들었습니다. 이 이슈로 계속 연극인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모레(좌담 이틀 후) 남산예술센터 시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연극인들과 간담회를 또 가집니다. 이런 자리들을 통해 공공극장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고 무엇보다 지속하는 길이 무엇인지 여러 방안을 찾아보려 하고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2020년 겨울에 동숭아트센터와 극장이 재개관하고 2021년에는 성북동 앵커(창작연극지원시설(가칭))가 개관합니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립미술관, 도서관의 분관 앵커들도 개관할 예정인데 이런 대형 문화 인프라를 운영할 전문성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 또 시 예산은 계속 지원 가능한지 등에 대해 전반적인 진단과 검토가 뒤따르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이미 다가온 근미래 환경의 변화라면, 남산예술센터가 만들어온 10년의 역사는 우리 모두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그 미래를 어찌해야 할 것인지는 당면 이슈입니다. 최근 재단의 조직 개편과 맞물려 남산예술센터의 독립성, 자율성 문제 제기로 시작된 토론회에 참여하면서 두 가지를 느꼈습니다. 하나는 남산예술센터를 포함해 공공극장의 문제가 앞으로 공연예술계의 생태계를 가늠할 큰 주제 중 하나라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재단의 조직 개편에 담긴 행정적 취지나 디테일을 밖에서 다 알기는 어렵고 또 그래서 질문할 수 있겠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 블랙리스트 당사자였기에 공공기관에 대한 현장의 불신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울문화재단의 과거를 살펴봤는데 남산예술센터가 만들어진 이후 지금껏 작품이나 제작에 재단이 관여했던 바는 없어서 참 다행이다 했습니다. 그러나 남산예술센터의 독립성, 자율성 논의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극장, 극장장, 예술권한, 행정권한, 시스템 등 이런 부분들을 다 따져보고 또 종합하는 다음 단계의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 가운데 현장의 진정성과 감수성 그리고 재단 조직의 행정적 개편 등이 서로 본뜻을 오해하지 않으면서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려 합니다.

유인촌

남산은 연극인들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찾아오고 싶은 공간입니다. 의자를 기부하고 이름을 새기고 했는데 어느 날부터 없어지고 지워지고…. 그런데 오랜 기간 비워놓고 일반에게는 빌려주지 않던 공간을 다시 활용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다른 목적으로 쓰인다면 연극계에선 상당히 반발할 것입니다.

김종휘

남산예술센터는 공공 제작극장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공간입니다. 시민 관객의 참여와 호응이 더 많아져야겠지만, 남산예술센터의 출발과 사명은 해당 장소의 지역 주민 참여나 생활문화의 활성화 등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나 공간과는 다릅니다.

유인촌

다시 대학로 서울문화재단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이 건물이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그런 상징성이 있다면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그냥 놔둬도 괜찮은데 꼭 그렇지 않다면 허물고 새로 짓는 게 오히려 훨씬 더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있는 걸 가지고 고치려니 더 힘들어지는 겁니다. 그건 뭐 경제적인 논리를 안 따질 수 없으니까 따져서 해야겠죠. 재단에서 뭔가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공연장, 갤러리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공연장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요새는 미디어 관련 스튜디오도 있어야 하고 세미나실도 있어야 하고, 그런 걸 다 따지면 여기도 현재 상태에서 고쳐서 다른 것을 들여와 쓰기란 쉽지 않다고 봅니다. 아래도 블랙박스로 바꾼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양하게 가변적으로 쓸 수 있겠지만, 또 어떻게 보면 공간이 좀 아깝더라고요. 사실 무대가 공간이 부족해 핸디캡이 많은 극장인데 차라리 객석을 대폭 줄이고 무대 공간을 더 넓혀서 남산처럼 아레나 스테이지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블랙박스로 한다면 맞춰서 할 수 있겠지만 선택의 폭은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겠죠. 재단의 입장이 분명하면 좋겠네요. 뉴욕시가 운영하는 퍼블릭 시어터(The Public Theater)1)라는 극장이 있습니다. 여러 번 가보았는데 그때마다 깜짝 놀랐어요. 겉으로 보기엔 건물이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공연장이 대여섯 개가 있더군요. 작은 공간부터 1,000명이 들어가는 공간까지 크기별로 있죠. 예전에 조셉 파프(1921~1991)2)가 운영했다고 합니다. 뉴욕시가 임대를 준 것인데 1년에 1달러로 아주 싸게 줬다고 하니 굉장히 상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당신이 알아서 이 극장을 살리라는 명분으로 극장으로 만들어준 것입니다. 재단이 이처럼 상징적으로 민간에게 역할을 준다면, 물론 굉장히 싼 임대료에 어떻게 운영할지는 그들(운영하는 자)의 책임이지만,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조셉 파프는 퍼블릭 시어터에서 상업적인 공연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공연을 했습니다. 아프리카 같은 제3세계의 수많은 예술작품들을 보여주었죠. 그런 곳은 시가 만들어놓고 철저하게 민간에게 위탁을 주는 형태죠. 브로드웨이의 수많은 상업적 공간들은 그대로 가면서 거기는 그 공간대로의 역할을 하는 거죠. 다양한 사례를 참고해 적절히 운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재단의 공익적인 목적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잘 정리해야, 명분 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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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상

제가 처음 블랙박스로 갔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기존 동숭아트센터는 프로시니엄(액자형 공연장)3) 극장인데, 말씀하신 대로 옆에 무대도 없고 백스테이지가 협소합니다. 당시에는 하나의 극장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지만 이제는 1,000석 규모의 극장부터 다양한 극장이 생기고 있습니다. 우리도 미래를 대비해 시대에 맞는 최적화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 싶었죠. 그러한 방편으로 생각한 것이 블랙박스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최근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탈장르화한 새로운 콘텐츠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블랙박스가 그런 점을 고려해 열린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아무래도 프로시니엄 극장을 쓰는 세대들은 제작비가 어느 정도 마련된 기성세대 예술가 위주가 될 테니 젊은 세대, 신진예술가들을 위해선 블랙박스가 나을 것 같았어요. 우리가 대학로 시대를 가져가면서 지향해야 하는 정신이 있다면 연극이라는 장르만은 아닐 것입니다. 보다 새로운 세대, 새로운 예술가, 새로운 예술, 이런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극 장르만이 아닌 새로운 젊은 예술가를 타깃으로 하는, 그들에게 집중하는 공간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예술은 아주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런 요구에 기존의 전통적인 공연, 훈련된 방식, 그것만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고, 그래서 블랙박스를 만들면 좋겠다고 한 것이죠.

유인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이 좋은 모델이니까 거기 가서 보고 참고하면 좋겠다고 했었어요.

안호상 그것 역시 부족합니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보다 더 나은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블랙박스를 제안한 겁니다. 처음 만들 때는 명동극장도 있고 대학로 연극을 하는 세대가 있으니 차이점을 둔다면 다른 연극을 하자였습니다. 그런 정도의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에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되면서 이해관계가 얽히고 말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공공 부분이 상당히 강화되고 전문화되니까 민간 부분이 상대적으로 열악해졌습니다. 특히 연극을 제외한 오페라, 클래식 음악 같은 타 장르의 경우 민간 부분이 거의 다 사라졌어요. 이런 흐름 속에서 민간의 연극도 과거에 비해 상황이 어려워졌죠. 상대적으로 공공예술단체들은 좋아지고 있습니다. 지원뿐만 아니라 관객 기반과 인프라도 좋아지고 있고요. 우수한 예술자원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 그런 자원들을 공급받아서 점점 강화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민간단체는 재정이 열악하고 관객 기반도 무너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문화재단은 예술가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니 젊은 예술가들, 지금 제도권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예술가들에 더 관심을 갖고 그쪽으로 재단의 방향성, 정신을 잘 표방하는 게 맞을 겁니다. 대학로 시대 역시 그걸 준비하는 새로운 전기로 생각해 많은 분들과 잘 협력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철환

저는 건물 활용에 대해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 두 질문에 대한 답을 정해야 합니다. 골고루 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이게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것인데 골고루 해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정말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금액을 지원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5,000만 원이 필요한 곳이 이러한 이유로 1,000만 원만 지원받는다면, 재단은 열심히 하고도 오히려 욕을 먹게 되지 않을까요.

유인촌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주철환

욕을 먹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왜 영화를 지원 안 하나요? 영화는 이미 상업적이고 대중적이고 수익성이 높습니다. 연극은 꼭 필요하지만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우리가 도와줘야 합니다. 연극 중에서도 진짜 시민에게 영양소가 될 수 있고 예술적 의미가 있는 작품들은 우리가 지원해야 합니다. 조금 더 보태 다양한 극본과 다양한 장르의 연극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안목이 중요한 거고요.

유인촌

김종휘 대표가 노리단을 해봤기 때문에 어떻게 할지에 대해선 잘 알 거예요.

안호상

한쪽에 치우치기보다는 골고루 하는 게 좋죠. 일관되게 하는 것보다는 다양하게.

김종휘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면 서울문화재단 15년의 역사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해야 할 것, 예술현장, 지역현장, 청년현장과 함께 만들어가야 할 우리 재단의 다음 단계에 대해 보다 더 깊이 숙의하고 다듬고 정돈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점에서 올 한 해 우리 재단이 경험하게 될 시간과 공간, 무엇보다 관계의 질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관련사진

  1.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의 비영리 공연 단체. 원래 공공도서관인 아스톨(Astor)이었으나 개조하여 조셉 파프가 운영하였다. 대표 공연으로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Shakespeare in the Park)가 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he_Public_Theater
  2. 미국의 연극 프로듀서 겸 감독. 퍼블릭 시어터를 설립하였고 뉴욕 셰익스피어 축제의 창시자이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Joseph_Papp
  3. 객석에서 볼 때 원형이나 반원형으로 보이는 무대. 액자처럼 보이기도 해 액자무대(額子舞臺)라고도 한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D%94%84%EB%A1%9C%EC%8B%9C%EB%8B%88%EC%97%84
정리 이규승·전주호·배슬기_서울문화재단 홍보팀
사진 조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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