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시 개발의 여명기를 포착한 소설을 찾아서
문학의 가장 오래된 역할 중 하나는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다. 작가가 특별히 의도하지 않는다 해도
한 편의 문학작품에는 그 시대가 주조한 사회상과 사람들의 무의식이 스며들기 마련이다.
우리가 읽는 소설과 시에는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 욕망, 의식과 무의식 등을 비롯한 일상적 삶의
세계부터 특정 공간을 선택하고 재현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가 숨어 있다.
1960년대 한국소설도 마찬가지다. 특히 1960년대 중후반은 경제 발전과 도시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시기이자 서울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출발점이었기 때문에, 이 시기의 변화는 당대 사회를 관찰하던 작가들에게도 풍부하게 포착되었다. 서울 도시 개발의 여명기가 이호철, 최인훈 등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소설 속에서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다.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와 김현옥 서울시장
1960년대 서울을 재현한 소설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할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1966)는 작품의 말미에서 당시 막 시작되던 서울의 도시 개발 현장을 포착했다. 변화하는 서울의 상황에 걸맞게 소설도 끝나야 한다는 암시를 주는 작품의 말미에는, 여주인공 길녀가 서울에 올라와 “밤차로 서울역에 내렸을 때” “역 앞에는 불빛도 환하게 지하도 공사가 마악 시작되고 있었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길녀가 그동안 익숙했던 서울에 다가오는 변화를 느끼는 장면이다.
1 1960년대 중후반 서울의 모습이 잘 반영되어 있는 작가 이호철과 최인훈의 대표작.
특히 이 소설은 당시 새로 부임한 서울시장이 시행한 사업들을 포착했다. 군인 출신 새 서울시장의 이름은 김현옥이었다. ‘불도저’라는 별명의 시장은 온갖 선전구호와 함께 ‘돌격’이라고 적힌 헬멧을 쓰고 서울 거리를 파헤쳤다. 서울의 터널을 새로 파고 주요 간선도로의 너비를 넓혔으며, 전차를 폐지하고 수많은 육교와 고가도로를 건설했다. 또 시민아파트와 광주대단지, 세운상가 등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는 실로 불철주야 좌충우돌 일하면서 서울의 도시 공간 구조를 대대적으로 바꿨다.
가령 “부산 거리를 의욕적으로 밀어버리고 계속 두 눈을 부릅뜨고 서울로 전임해온 젊은 시장은 부임하자마자 전 시장이 얼마나 일을 안하고 빈둥빈둥 놀기만 하였는가 서울시장으로서 서울시 행정에 얼마만큼 의욕이 없었는가 일부러 강조나 하듯이
우선 교통난 완화에, 세종로 미도파 지하도 공사 착수, 도로확장 공사가 사방에 착수되었다. 서울 사람들이란 원래가 입만 까지고 극성이어서 일을 안 하면 안 한다고 타박, 하면 한다고 무슨 흠이라도 잡아서 타박, 저는 트랜지스터 라디오 메고 유원지로나 나돌면서 시장에 대해서도 빗발치듯 여론이 들끓고 있었다”는 묘사는 김현옥 서울시장의 도시 개발 모습을 잘 보여준다.
1966년 당시 김현옥 시장의 시정 운영이 주로 도로와 지하도 공사, 교통 문제 등에 초점을 맞췄다는 사실과 이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반응을 담았다.
2 1966 년 지하도 공사가 진행되던 광화문 사거리.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3 지하도 공사 계획을 설명하고 있는 김현옥 서울시장.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날로 번화하던 서울 광화문 풍경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69~1970)은 도심이 문화, 교육, 소비 등을 독점하며 중심으로 강화되는 현상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서울 거리를 왔다갔다하는 구보씨의 눈은, 경제 성장의 여파가 일반 대중의 삶을 변화시키고, 전통적인 강북 도심이 유흥과 오락, 더 나아가 소비와 유행의 중심지로 탈바꿈되는 현상을 향한다. 그중에서도 그가 자주 가는 광화문 세종로 일대는 1960년대 후반의 변화 덕분에 최고의 번화가가 되었다.
최인훈은 당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광화문 시민회관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시민회관에서 지하도까지는 과자집, 양요릿집, 여행사, 구둣방, 찻집이 줄느런히 처마를 맞대고 늘어서 있다. 그 거리는 해마다 변해왔다. 어디선가 쌓여가는 기름기가 어디론가 돌아돌아 이렇게 보다 산뜻한 창문과 보다 매끈한 지음새가 되어 번져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다소간에 돈을 토해놓고 나오면 창문과 지음새는 더욱 매끈해진다는 식인 모양이었다. 하기는 그 집들 임자는 수없이 바뀌었겠지만, 아랑곳없이 집들은 살이 찌고 개기름이 번드르르해가는 것이었다. …… 시간이 제가 무엇이관대
이런 기막힌 요술을 부리는 것일까.”
1960년대부터 광화문 거리는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모습을 벗어나 조금씩 재건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은 역사의 재건이라기보다 현대 도시의 번화가에 적합한 고층 건물, 대형 건물, 전시적 건물들을 새롭게 지어나가는 과정이었다. 이 소설에서 구보씨가 걷고 보고 활동하는 행적을 따라가면, 세종로 일대가 정치, 문화, 예술, 교육, 편의시설 등이 집중된 거대한 중심지로 재탄생했음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세종로는 1960년대 후반에 지금과 거의 비슷한 경관이 완성되었다. 1966년 광화문 지하도가 건설되었고, 1968년 한국전쟁 때 소실된 광화문이 콘크리트로 복원되고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 세워졌다.
서울의 도시 개발과 고층화를 두려워하던 서민들
1960년대 중후반, 날로 번듯해지는 서울을 누구나 환영하지는 않았다. <서울은 만원이다>에는 여주인공 길녀가 당시 하나씩 들어서는 고층 건물들을 보고 ‘써늘한 공포’를 느끼는 장면이 나온다. “순화동 좀 못 미처 신문사라는 높은 건물이 거의 완공되고 있었다. 저것이 우리나라 첫째 가는 부잣집이라는 소리를 언젠가 미경이에게서 들은 일이 있지만,…… 요 근래에 근처에서는 건물만도 뉴코리아호텔, 대한항공, 대한일보 그리고 대한화재, 십층 건물들이 연방 올라서고 있다. 부잣집은 첫째만 찾지 않아도 여기저기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부잣집들이 과연 어느 정도로 어느 만큼이나 부자들인지 길녀로서는 전혀 종잡을 수도 없었다. 무엇인가 써늘하게 무서워지기부터 하였다.”
길녀의 눈이 포착한 건물들은 허구가 아니라 당시 실제로 세워진 서울 고층 건물들의 대표 격이었다. 순화동의 신문사 건물인 중앙매스컴센터는 10층이었지만, 대한항공 건물인 서소문동의 한진빌딩, 태평로2가의 대한일보 건물, 남창동의 대한빌딩은 모두 그 당시에 건설된 13층 건물들이었다. 시청 앞 광장 동편에 있던 뉴코리아호텔도 1965년 지상 13층 높이로 완공되었는데, 한때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길녀가 언급한 건물들을 포함하여 1966년 당시 서울에 10층 이상 건물들이 18개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새로 세워지는 고층 건물들이 하층민들에게 이질적이고 공포스럽게 다가왔음을 실감할 수 있다. 광화문이나 시청 앞 광장부터 을지로, 태평로, 서소문로 같은 도심부에 지어지는 고층 건물들은 거스를 수 없는 현상이었다. 이 소설이 쓰인 직후인 1966년부터 1971년 사이의 5년간, 서울의 고층화를 상징하는 건물들은 22층 높이의 정부종합청사, 18층 높이의 조선호텔, 청계천로에 김중업의 설계로 세워진 31층짜리 유리 마천루 삼일빌딩 등으로 늘어났다. 이 건물들은 도심의 고층화가 막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1966년 이후 도심 지역은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정책에 올라탄 여러 기업들이 전유했고, 고층화되는 도심 풍경에 맞지 않는 빈민과 하층민들은 정부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외곽으로 추방되었다. 하층민 길녀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도심의 고층 건물들을 보고 무서움을 느낀 것은, 그의 계급적 위치에서는 본능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반응이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질주하던 도시 개발의 광풍은, 지금의 성남시인 광주대단지로 도시 하층민들을 이주시킨 정책이 폭력적인 시위를 낳으면서 한 차례 파국을 맞이했다. 박태순의 <정든 땅 언덕 위>,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와 같은 소설들은 강제 이주로 형성된 당시 빈민촌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소설이 도시 하층민에게 보여준 애착과 공감은, 현재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폭력적 도시 개발이 어떻게 방향을 바꿔야 할지 되돌아보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4 1960년대 후반 촬영된 서울 세종로의 모습. (출처 e영상역사관)
5 63빌딩이 세워지기 전까지 서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던 삼일빌딩과 1960년대 후반 완공된 청계고가도로. (출처 e영상역사관)
6 1966년 도시 빈민들을 강제 이주시켜 형성된 봉천동 빈민촌.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 글 송은영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있다.
<서울 탄생기: 1960~1970년대 문학으로 본 서울의 사회사>(푸른역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