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 대한 지각을 이끌어내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태어났다가 버려진 야생동물을 사진으로 기록하거나 해가 뜨지 않는 북극의 기상학자를 촬영하는 사진작가, 버려진 땅에 나무를 심는 작가….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환경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한다. 지구를 지키기 위한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예술가들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1 미즈타니 요시노리, <도쿄 앵무새>,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 가변크기, 2013, 작가 소장.
2 2018 서울사진축제 전시 전경. 프랑스 원자력 발전소의 이미지를 담은 한성필 작가의 작품이 전시됐다.
파괴된 환경을 상상하거나 기록하거나
연녹색보다 훨씬 밝은 형광색의 앵무새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다니거나 나무 위에 수백 마리씩 앉아 있는 도쿄의 풍경은 기이하다. 일본의 사진작가 미즈타니 요시노리가 포획한 이 이미지는 언뜻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공포가 느껴진다. 열대야생 앵무새는 세계적으로도 이슈인데 도쿄에만 1,000마리 이상 살고 있다.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이 앵무새들은 한때 일본에서 인기를 끌다가 버려졌다. 미즈타니 요시노리의 <도쿄 앵무새>(Tokyo Parrots) 연작은 지난 11월 1일 ‘멋진 신세계’라는 주제로 개막한 2018 서울사진축제에서 소개됐다. 올더스 헉슬리가 1932년 발표한 소설 <멋진 신세계>는 과학의 발달로 인해 인간 모두가 인공적으로 제조되고 관리되는 미래 사회를 소재로 한다. <도쿄 앵무새>는 <멋진 신세계> 이후 기술의 발달과 환경 파괴로 인해 나타난 사회적 풍경, 재맥락화(re-contextualization)된 자연을 보여준다. 도쿄라는 도시의 자연 속에 편입된 새들처럼, 우리가 믿었던 자연의 질서 속에 자연스럽게 있어야 할 자리가 인간에 의해 뒤틀리고 있다.
미즈타니 요시노리 등 사진작가들은 환경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보여준다. 일본의 하타케야마 나오야는 산업화의 원료를 얻기 위해 채굴되는 석회암 산의 폭발 장면을 담아 <폭발> 시리즈를 선보였다. 17세기 풍경화처럼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은 원자력 발전소의 풍경을 담은 한성필의 사진, 중국 문명의 모태인 황허강의 풍경을 통해 산업화로 파괴된 중국과 닝샤후이족 자치구의 사막을 그리는 사진작가 장커춘의 작품은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발생된 ‘조작된 풍경’을 주목하게 만든다.
세계 각국의 환경 문제를 다루는 ‘서울환경영화제’를 통해 지구가 처한 환경 문제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국제경쟁 부문 대상 수상작인 왕구량 감독의 <플라스틱 차이나>(Plastic China, 2016)는 중국의 폐기물 수입 정책을 변화시킨 충격적인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큰 문제가 된 쓰레기 대란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과 다큐멘터리 영화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성찰하고 더 섬뜩한 상상력으로 미래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선보인 세스 라니(Seth Larrey) 감독의 <로만의 방주>(Roman’s Ark, 2011)도 그중 하나로 핵 참사로 폐허가 된 시대를 견디는 한 식물학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식물학자 로만은 5년마다 위험을 무릅쓰고 밖으로 나가 지구의 흙을 검사하며 땅이 소생하길 기다린다. 비축해둔 수백만 개의 씨앗을 땅에 뿌리며 식물들이 자라길 기도한다.
3, 4 영화 <플라스틱 차이나>의 포스터와 영화 속 한 장면.
5 영화 <로만의 방주>.
기상(weather)을 소재로 한 예술
빛만 있다면 씨앗이 자랄까? 빛이나 날씨마저도 인간의 개입으로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다. 옛 선인들은 날씨가 신이나 정령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중세에는 요술로 날씨를 변화시켰다는 죄목이 있었다니 흥미롭다. 2003년 영국 테이트 모던의 터빈홀에서 진행된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on)의 <기상 프로젝트> (The Weather Project>는 2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터빈홀에 떠오른 인공태양 아래 관람객들은 누워 있기도 하고, 해돋이를 보듯 태양을 향해 서 있기도 했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을 이렇게 경이롭게 쳐다본 적이 얼마나 될까. 아이러니하게도 관람객들은 진짜 태양이 아닌 인공태양 앞에서 경이로움과 불안 그리고 강박을 체험했다.
올해 한국 미술계에서도 날씨가 화제였다. 디뮤지엄의 기획전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는 5월 3일부터 11월 25일까지 장기간 진행됐다. 마틴 파(Martin Parr), 울리히 포글(Ulrich Vogl)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 26명이 참여해 햇살, 눈, 비, 안개, 뇌우 등을 소재로 날씨에 관한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들려줬다. 앞서 2018 서울사진축제에 참여한 작가들이 환경 파괴가 초래할 결과에 대한 경각심을 드러낸다면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는 일상의 인사처럼 친근하게 건네는, 날씨에 대한 ‘말 걸기’였다. 전시에서는 빛과 공간을 디자인하는 작가 크리스 프레이저(Chris Fraser)의 설치작품 <Revolving Doors>를 통해 날씨의 세계로 진입해 마크 보스윅(Mark Borthwick)의 <햇살> 시리즈에 이르면 햇살 아래 나른하게 보내는 일상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감지할 수 있었다. 올리비아 비(Olivia Bee)의 맑은 날, 마틴 파의 해변 풍경, 미즈타니 요시노리가 그린 여름 눈, 동화처럼 보이는 북극의 환경을 포착한 예브게니아 아부게바(Evgenia Arbugaeva), 어둠과 밤의 존재를 들여다보게 한 마리나 리히터(Marina Richter)의 작업은 날씨에 대해 의문을 품고 날씨를 신성시했던 태곳적 인류처럼 경건한 마음을 갖게 했다.
예브게니아 아부게바는 북극에 위치한 티크시에서 어린 소녀 타냐와 교감한 <Tiksi>를 선보였으며, <Weatherman>에서는 겨울에 해가 뜨지 않는 러시아 북부 호도바리야 기상관측소의 기상학자를 담았다. 13년 이상 홀로 근무하고 있는 기상학자 슬라바 코롯키의 일상을 담은 기록 작업은 신비롭고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이면에서는 영화 <로만의 방주> 속 식물학자가 연상된다.존 러스킨(John Ruskin)은 “햇볕은 감미롭고, 비는 상쾌하고, 바람은 힘을 돋우며, 눈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가 있을 뿐”이라며,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어떻게 즐거움을 주는지 누구나 알고 있다”고 말했다.
6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포스터. 작품은 예브게니아 아부게바의 <Tiksi>.
7 <Dispersers of Light>, 2018. ©Mark Borthwick
8 <Lake Garda>, Italy, 1999. ⓒMartin Parr Courtesy of the Artist and Rocket Gallery
각자의 방식으로 환경 문제를 숙고하다
우리는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명상, 고마움을 잊고 지낸 건 아닐까? 사비나미술관 신축 재개관 기념 특별전 <그리하여 마음이 깊어짐을 느낍니다: 예술가의 명상법>에서 그 해답을 모색해볼 수 있다. 지난 11월 1일 개막해 내년 1월 31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에는 박선기, 한애규, 허윤희, 김지수×김선명, 마이클 케나, 이벨리쎄 과르디아 페라구티, 장 샤오타오 등의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명상’의 가치와 의미를 현대미술 작가들의 명상법을 통해 살펴보는 전시다.
허윤희의 <나뭇잎 일기>는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매일 나뭇잎을 주워 그린 작품이다. 산책길에 나뭇잎을 채집해 그린 후 그날의 이야기를 글과 함께 기록했다. 김지수×김선명의 <페트리코>는 돔 구조물의 작품으로, 관객이 직접 작품 안에 들어가 편안하게 누울 수 있다. 실제 식물에서 채집한 천연향이 마치 들판에 누워 있는 것처럼 공간을 채워준다. 눈을 담은 마이클 케나의 사진, 숯과 나일론 실로 매단 박선기의 작품은 우주에 떠 있는 운석을 상상케 한다.
지난 4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레몬와인 바가 생겼다. 2018 아시아 기획전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에서 선보인 대만 출신의 작가 황포치의 <500그루의 레몬나무: 레몬와인 바>다. 황포치는 크라우드펀딩으로 500그루의 레몬나무를 구입해 버려진 땅에 심었다. 수확한 레몬으로 직접 와인을 만들어 관람객들에게 나눠주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버려진 땅에 레몬나무를 심은 황포치, 해가 뜨지 않는 러시아 북극의 기상학자를 기록한 예브게니아 아부게바, 산업 개발로 밀려나는 거대한 문명의 강을 기록한 장커춘, 인간의 이기심으로 태어났다가 버려지기를 반복하는 야생앵무새를 기록한 미즈타니 요시노리, 자연 혹은 미술관 안에 인공자연(artificial nature)을 설치함으로써 새롭게 창조된 자연과 환경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 올라퍼 엘리아슨. 예술가들은 이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환경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는 지각 그 자체를 의식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앞서 열거한 현대예술 작가들은 작품 그 자체보다 참여라는 능동적인 행위를 통해 ‘지각’이라는 결과물을 얻기를 권유한다.
이집트에서는 쇠똥구리 모양의 기념품이 인기다. 쇠똥구리는 케프리(Khepri)라는 신의 형상으로 여겨지는데 케프리는 재생과 태양의 움직임을 관할하는 신이다. 쇠똥구리가 열심히 쇠똥을 굴리듯이 케프리가 열심히 태양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고대예술이 그러했듯 현대예술도 ‘재생’이 근본적인 화두다. 현대처럼 ‘환경 파괴’로 인해 총체적 난국에 처한 인류는 없을 것이다. 태양을 움직인 케프리를 진심으로 믿어야 할까. 이제 이런 신화적 이야기보다 인공지능이나 유전공학을 신봉하는 시대에 예술가들의 고뇌는 더욱 깊어진다.
9 박선기, <An aggregation>, 숯, 나일론실 등, 400×400×3000cm, 2018.
10 허윤희, <나뭇잎 일기>, Gouache on paper, each 29.7×21cm, 2008-2018.
- 글 천수림 아트 저널리스트
- 사진 제공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사비나미술관, 디뮤지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