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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남산예술센터 2018 시즌 프로그램 소개 무대 위에 펼쳐지는 숙고와 성찰의 시간
남산예술센터는 지난 1월 17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2018년 시즌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성찰과 되짚기. 이번 시즌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다양한 무대를 통해 한 시대의 파국과 변화를 겪은 개인의 내면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그에 뒤따르는 숱한 질문들을 던진다. 올해 어떤 작품들이 관객을 기다리는지 미리 만나보자.

관련 이미지

1 1월 17일 남산예술센터 시즌 프로그램 기자간담회 모습.
2 남산예술센터 2018 시즌 프로그램 <처의 감각> 포스터.
3 작년에 진행된 낭독공연 <처의 감각> 현장 스케치.

성찰과 되짚기로 이어가는 남산예술센터의 행보

극장의 생애도 사람과 같아 세월에 따라 숱한 우여곡절을 감당해야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남산예술센터가 지나온 행보는 그 어느 때보다 드라마틱했다. 극장 밖의 드라마도, 극장 안의 드라마도. 극장 밖에서는 전 국민이 위기와 절정의 파고를 타고 극적인 반전을 맞이했다. 극장 안에서는 세월호와 예술 검열, 소수자와 인권, 예술계 성폭력 등 연극인들이 내세우는 주제의 강도와 목소리의 데시벨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2018년, 올해 남산예술센터의 작품들은 성찰과 되짚기라는 두 단어로 요약된다. 변화를 이루었지만 지금 우리가 이룩한 세계가, 혹은 정신이 사실은 부실공사로 허술하게 증축된 것은 아닌지,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이 그간 역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밝혀내지 못한, 유보된 과거 때문은 아닌지, 여전히 우리 내면에 잠식해 있는 불안과 공포가 향후 우리 삶을 뒤흔드는 여진이 되지는 않을지….
다급한 세상의 변화에 복무하느라 미루어두었던 숙고와 성찰,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는 ‘되짚기’의 작업들이 올해 남산예술센터 시즌 프로그램의 특성이다. 극장 밖에서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가 가동되고, 우리 시대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여러 행정적인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면, 이 시대의 연극인들은 인간의 내면 과 과거의 행적들을 재탐색하면서 작가들만의 방식과 언어로 우리 안의 또 다른 규명 작업들을 극장 안에서 진행할 것이다.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다 <처의 감각>

올해 남산예술센터의 시즌 프로그램은 극장 스스로 지난 제작과 정의 미숙함과 오류를 되짚어보는 시도와 함께 시작된다. <처의 감각>은 고연옥 작가의 벽산희곡상 수상작으로, 2016년 <곰의 아내>(고선웅 각색, 연출)로 무대화되고, <처의 감각>(이음 출판사)이라는 원제로 희곡집이 발간됐다. 당시 공연 프로그램북에서는 이 작품을 ‘처의 감각 희곡 읽기’와 ‘곰의 아내 무대 읽기’로 분할해 희곡은 희곡대로, 공연은 공연대로 소개했다. 당연히 한 몸이 되어야 할 희곡과 공연이 한 몸이 되지 못한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초연의 순간까지 연출가와 극작가가 작품을 바라보는 세계관의 간극을 좁히지 못해 발생한 일이었고, 결국 창작극 초연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연출의 각색본으로 이루어졌다.
<곰의 아내> 공연 이후, 극작가와 연출가 사이의 완성된 증폭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부채감은 극장을 고민하게 했고, 결국 2017년 봄 <서치라이트>를 통해 원작의 낭독공연을 가진 뒤 올해 원작과 작가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담아 원제 <처의 감각>(고연옥 작, 김정 연출)으로 공연을 새롭게 제작한다. 특히 지난해 화제작 <손님들>로 각종 연극상을 휩쓴 김정 연출과 고연옥 작가가 의기 투합해 기대를 모은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남산예술센터는 이 공연을 통해 제작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민낯의 경험과 문제들을 관객과 평단, 연극계와 공유하고자 한다.
한편 <처의 감각>은 오는 4월 28일 독일 하이델베르크 극장에서 열리는 희곡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독일어 낭독공연으로 무대에 오른다. 공연의 해외 진출과 달리 희곡 텍스트의 해외 진출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 우여곡절 많았던 텍스트의 독일행도 많은 이들이 주목해주길 바란다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는 것<에어콘 없는 방>,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 <두 번째 시간>

2018년 레퍼토리 공연으로 다시 무대에 오르는 <에어콘 없는 방> 의 초연 당시, 이성열 연출은 90살이 넘어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6·25 등 6번의 정변과 전쟁을 겪으셨으니, 우리 근현대사는 위인도 영웅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 맨 정신으로 살아내기에 얼마나 가혹했는가, 하는 이야기였다.
<에어콘 없는 방>(고영범 작, 이성열 연출)과 <두 번째 시간>(이보람 작, 김수희 연출)은 바로 이 가혹한 시간대를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이다. <에어콘 없는 방>은 1930년대, 1945년 해방 전후, 1973년 유신시대를 넘나들며 박헌영, 엘리스 현, 피터 현 등 해방 전후사의 인물들이 출몰한다. <두 번째 시간>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1970년대의 의문사를 둘러싼 이야기로, 이 의문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이들이 등장한다.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최치언 작· 연출)는 혼탁했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만날 때마다 딜레마에 빠져 옥신각신하는 두 주인공을 통해 ‘개인의 용기’라는 주제를 전하는 블랙 코미디이다.
이쯤에서, 최치언 작가의 흥미로운 작품 제목을 빌려 질문해본다. 그런데 어쩌나, 동시대 작가들이 어쩌다, 이렇게 시계를 거꾸로 돌리게 되었을까? 어쩌나. 그것은 현재에 대한 의문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하는 ‘지금’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오늘의 작가들은 시선을 과거로 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 원인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왜 오른손에 휴대폰을 든 채 몸으로는 21세기를 살며, 왼손에는 태극기를 든 채 정신은 20세기를 살고 계신지, 몇 번의 터치만으로 지구 저 끝 섬나라의 날씨도 검색할 수 있는 시대에 왜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진실이 이리도 많은 것인지. 그 이유를 묻기 위해,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여정을 시작한다.

남산 무대 위에 인형극? 병신춤? 놀라지 마시라 <손 없는 색시>, <이야기의 方式, 춤의 方式-공옥진의 병신춤 편>

한 여인이 있다. 주어진 생이 너무 고통스러워 늘 가슴이 아프다. 매일매일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러나 손은 이 고통스러워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달아난다. 이 아름답고 시적인 이야기를 전해줄 주인공 배우는 인형이다. ‘예술무대 산’과 공동 제작하는 <손 없는 색시>(경민선 작, 조현산 연출)는 남산예술센터 제작 역사상 처음으로 추진하는 인형극이다. 조현산 연출의 설명에 의하면, 인형의 표정은 단 하나뿐이라 인형극을 본다는 것은 마치 은유가 장착된 시를 읽는 것과 같다. 즉 관객들은 인형의 단 하나의 표정 속에서 그 안에 숨어 있는 숱한 감정과 상념을 스스로 상상해야 하는 것이다. 관객들은 <손 없는 색시>의 숨어 있는 표정을 상상하는 여정 속에서 지금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고통을 바라보기.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기. 그리고 깊게 공감하기.
윤한솔 연출은 단 하나의 표정을 지닌 <손 없는 색시>와는 정반대로, ‘천의 얼굴’을 가진 고 공옥진 선생을 남산 무대 위로 소환한다. <이야기의 方式, 춤의 方式?공옥진의 병신춤 편>(그린피그공동 창작, 윤한솔 연출)은 2014년 ‘혜화동 일번지’에서 ‘전통’을 탐구하는 과정의 하나로 선보인 <이야기의 方式 노래의 方式-데모버전>의 연작 시도다. 옛 판소리를 배우며 현대와의 접점을 찾고 자 했던 전작에 이어 올해는 고 공옥진 선생의 병신춤을 탐구한다. 그런데 그 탐구 방식이 당황스럽다. 병신춤을 최근의 아이돌 춤처럼, 키네틱 센서를 활용해 과연 배울 수 있단 말인가?

권여선에 이어 장강명까지, 소설의 무대화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권여선의 소설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2016)에 이어 올해는 장강명의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정진 세 각색, 강량원 연출)의 무대화가 이루어진다. 소설의 줄거리대로라면, 동급생 친구를 살해한 뒤 15년을 복역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세상으로 나올 결심을 하는 한 남자가 있다. 이 작품은 그의 꿈인지, 상상인지, 소설인지 모를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연출들은 소설을 읽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머릿속에 그린 상상을 훌쩍 뛰어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연극의 형태를 추론하기엔 난감한 소재를 품고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SF 적인 소재, ‘우주알’이라는 독특한 상징을 대체 어찌할 것인가? 연극팬이라면 신체의 행동과 이미지 해석을 통해 독특한 작업 세계를 드러내는 강량원 연출의 막강한 상상력에 대한 기대감으로 극장을 방문할 것이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무대가 궁금하다면 극장 나들이를 해보길 권한다

관련 이미지

1 <에어콘 없는 방> 공연 모습.
2 장강명의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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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홍콩, 일본 국제 공동 제작<나와 세일러문의 지하철 여행>(가제)

남산예술센터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의 장기 계획으로 한국, 홍콩, 일본 3개국의 국제 공동 제작을 추진하고 있다. 이 작품은 2016년 촛불 세대와 태극기부대 세대로 상징되는 세대 갈등이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인근 아시아 국가에서도 만연할 것이라는 가정 속에서 시작되었다. 즉 단기간에 국가를 설립하고 순식간에 근대화과정을 밟아야 했던 아시아 국가들은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 사이에 극단적인 이념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가 존재할 것이라는 가정이다.
첫 출발은 남산예술센터에서 한국의 이경성 연출을 비롯한 아시아 3개국의 80년대생 연출들에게 ‘아시아 세대전쟁’이라는 주제를 제안하며 시작됐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한국어, 중국어, 일본 어가 뒤섞인 워크숍을 거치면서 이 무거운 주제는 <나와 세일러문의 지하철 여행>(가제)이라는 발랄한 제목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예상과는 달리 젊은 세대들의 신선한 목소리가 담긴 실험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12월에 남산에서 프리프로덕션 쇼케이스의 형태로 먼저 선보이고, 완성작은 2019년 각국 무대에 오를 예정 이다

글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
사진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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